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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동의 의미와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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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6-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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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회학자 베버(Max Weber; 1864 ~ 1920)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4)에서 잘 지적했듯이, 종교개혁 이후에 등장한 신교 신자들은 근면한 노동을 통해서 부를 축적하는 것 자체가 신의 축복이며 신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한다. 자연 속에서 인간은 이방인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한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한다. 결국 본래적 의미에서 보면 노동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하는 인간의 속박, 인간의 노예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당시 봉건적 공동체가 붕괴되면서 배타적 사유화(私有化)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을 가져왔고, 이는 곧 봉건적 질서로부터의 해방되어 근대사회로 나아가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설명



<< 노동 = 자유; 긍정적 노동 개념(槪念) >>


순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여(en travail)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노동은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것이었지 인간의 고귀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영어권에서도 오랫동안 노동은 ‘노고와 고초’(toil and troubl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노동은 자연의 무서운 힘을 정복하여 인간의 충실한 종으로 만든다. 영어권에서도 오랫동안 노동은 ‘노고와 고초’(toil and trouble)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사유재산에 대한 옹호와 찬양을 위한 것이었다. 노동은 속죄의 가능성을 뜻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예들의 생산적 노동(ponos)과 자유민들의 지적ㆍ정치적 실천(praxis)을 날카롭게 구분하고, 후자만이 인간의 본질인 이성을 진정으로 실현하는 활동이라고 보았다. 한편 영어의 ‘labour’는 라틴어의 ‘labor’에서 온 것인데, 이 또한 고역(苦役)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다. 원래 프랑스어에서는 신체형을 집행하는 형리가 죄인의 옆구리나 팔다리를 고문하는 것, 또는 산모가 진통 중인 것을 ‘travail한다’고 말했다. ‘tripilium’은 사나운 황소나 말의 발바닥에 편자를 박을 때 소와 말을 묶어놓는 기구, 즉 3개의 말뚝을 의미한다. 그는 “신체에 대한 천부적 권리---󰋼 신체의 활동인 노동에 대한 권리---󰋼 노동의 결과물인 생산물에 대한 권리---󰋼 경제적 재화, 즉 재산에 대한 권리”로 이어지는 도식을 제시하면서 노동을 사적소유의 근원으로 찬양했다. 이런 어원에서 직접 나온 명사, 즉 ‘travail’를 하는 사람, 즉 ‘travailleor’(나중에 ‘travailleur’로 변했다)는 처음에는 직공(artisan)이나 노동자를 뜻한 것이 아니라, 신체형을 집행하는 형리(刑吏), 고문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노동은 “우리를 자연의 주인이며, 소유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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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사회철학자는 영국의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였다. 노동은 우리를 ‘동굴의 세계’, 즉 물질의 세계에 묶어놓는 사슬을 의미한 반면, 지혜로운 자의 명상은 인간이 물질세계에 매여 있다는 것을 잊고 ‘영혼의 눈’이 순수한 이데아의 찬란한 빛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노동은 죄를 씻어내기 위한 속죄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노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관념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아 한편 현대 신학자들은 노동이 죄의 대가와 필연적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tripilium’은 사나운 황소나 말의 발바닥에 편자를 박을 때 소와 말을 묶어놓는 기구, 즉 3개의 말뚝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노예들의 생산적 노동(ponos)과 자유민들의 지적ㆍ정치적 실천(praxis)을 날카롭게 구분하고, 후자만이 인간의 본질인 이성을 진정으로 실현하는 활동이라고 보았다. 노동은 우리를 ‘동굴의 세계’, 즉 물질의 세계에 묶어놓는 사슬을 의미한 반면, 지혜로운 자의 명상은 인간이 물질세계에 매여 있다는 것을 잊고 ‘영혼의 눈’이 순수한 이데아의 찬란한 빛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냉담하고 적대적인 자연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소외를 나타낸다’.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은 ‘노동 = 벌’이라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는 근대 이후에 서서히 alteration(변화) 를 겪기 시작한다. 루터(M. Luther; 1483 ~ 1546)나 칼뱅(Jean Calvin; 1509 ~ 1564) 등 종교개혁의 지도자들은 노동을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소명(召命)으로 해석함으로써 노동에 대한 전통적 견해를 근본적으로 alteration(변화) 시켰다. 따라서 배타적 소유권의 정립이 로크 정치철학의 기본적 문제의식이었으며, 로크는 소유(property)를 ‘생명, 자유 및 재산’(life, liberty and estate)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槪念)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세 수도사들도 ‘기도와 노동’(ora et labora) 두 가지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았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도 노동은 단순한 벌의 표시만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노동이라는 말의 어원은 속박과 고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에 의해서 인간은 낯설었던 것과 친숙해지고 아직 그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것에 인간적 형태를 부여하게 된다. 왜냐하면 창조 당시에 이미 인간은 이 땅에 노동을 가하고 이 땅을 정복하기 위해, 이 땅 위에 거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영어의 ‘labour’는 라틴어의 ‘labor’에서 온 것인데, 이 또한 고역(苦役)이나 고통을 의미한다. 프랑스어로는 노동을 ‘travail’라고 하며,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tri-pilium’(3개의 말뚝)이다. 예컨대 󰡔성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그 이후로 노동에 대한 경제학적 analysis을 통해 노동을 모든 부의 원천, 모든 가치를 만들어내는 근원으로 격상시킨 것은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나 리카도(David Ricardo; 1772 ~ 1823) 같은 고전정치경제학자들이었고, 이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analysis한 것은 마르크스였지만, 인간 노동의 근원적 중요성을 인간학적 관점에서 깊이 통찰한 철학자는 헤겔이었다. “너는 너의 딸을 그의 아들에게 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며, 너 자신도 그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본래적 의미에서 보면 노동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 하는 인간의 속박, 인간의 노예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루터는 “땀 흘리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선언하여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의 기초를 제공했으며, 그가 성서를 번역할 때 썼던 독일어의 ‘Beruf’(직업)는 원래 ‘하나님의 부르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플라톤의 이원론(영원한 이데아들의 세계와 alteration(변화) 하는 물질의 세계)은 사회적 이원론, 다시 말해 이데아들을 명상할 수 있는 자유민과 물질을 가지고 고통스럽게 노동하는 노예들의 대립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다아 심지어 플라톤은 기술자들까지도 경멸한다. 장 라크르와는 노동은 소외의 표시인 동시에 ‘소외의 치료제’라고 말한다. 이런 어원에서 직접 나온 명사, 즉 ‘travail’를 하는 사람, 즉 ‘travailleor’(나중에 ‘travailleur’로 변했다)는 처음에는 직공(artisan)이나 노동자를 뜻한 것이 아니라, 신체형을 집행하는 형리(刑吏), 고문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특히 칼뱅은 사유재산 및 이자를 인정하고 산업 및 상업 활동을 장려함으로써 초기 자본주의의 발전을 주도하던 신흥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그가 되었다. 원래 프랑스어에서는 신체형을 집행하는 형리가 죄인의 옆구리나 팔다리를 고문하는 것, 또는 산모가 진통 중인 것을 ‘travail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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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노동의 의미와 변천

Ⅰ. 노동의 의미의 변천

노동의 의미는 형이상학적 상황의 의미에서 나왔지만, 노동은 형이상학적 상황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 노동 = 속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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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노동의 의미의 변천 << 노동 = 속박 >> 노동이라는 말의 어원은 속박과 고문이다.
노동, 의미, 변천

로마인들도 공부하는 여가를 뜻하는 ‘otium’과 노동, 직업, 사업을 뜻하는 ‘negotium’을 구별했는데, 이 경우에 노동은 완전히 소극적인 의미를 지니며, 여가의 결핍을 뜻한다. 프랑스어로는 노동을 ‘travail’라고 하며, 이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tri-pilium’(3개의 말뚝)이다. 따라서 노동은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냉담하고 적대적인 자연에 적응해야 하는 인간의 ‘소외를 나타낸다’.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은 ‘노동 = 벌’이라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데,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여(en travail)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도 노동은 인간의 비참함을 표현하는 것이었지 인간의 고귀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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